[주간조선] 공수처법 뒤에는 조국의 참여연대가 있다
하주희 기자 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입력 2019.05.12 06:05
물론 공수처가 호락호락 설치되리라 보는 사람은 적어도 여의도엔 거의 없다. 선거구 개편과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검경수사권 조절 등 공수처와 함께 묶인 법안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서다. 같은 이유로 공수처, 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도 드물다. 정치인들은 주된 관심은 선거구제 개편에 있다. 일반인들은 덮어놓고 찬성하거나 무관심하다. ‘검찰과 권력층 비리 잡는 기관’쯤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분명한 건 20여년 전 공수처법이 화두가 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법제화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표현을 빌리면 ‘처음으로 당정청이 협의해 합의를 이뤘다’.
공수처 문제가 처음 정치권의 화두가 된 건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없애고 ‘공직비리수사처’를 설치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다시 불거졌다. ‘공직자부패수사처’를 법제화하려 했다. 하지만 국회와 검찰의 반대로 그때도 무산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모두 각자의 자서전에서 공수처를 설치하지 못한 걸 후회되는 일로 언급했다.
공수처는 참여연대의 20년 꿈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수처법 뒤엔 참여연대가 있다. 참여연대는 1996년부터 공수처 설치를 요구해왔다. 아예 법안 형태로 만들어 국회에 입법 청원한 게 확인된 것만 5차례다. 문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9월엔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경실련, 민변, 참여연대, 한국투명성기구,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을 결성했다. 현재도 카드뉴스 제작, 국회에 의견 보내기 캠페인 등 다양한 형태로 공수처 설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공수처가 화제가 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수처는 1998년 제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설치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도 어떤 역할을 했겠지만 조국 수석의 역할이 더 커 보인다. 공수처에 관해선 참여연대 조직 중 사법감시센터가 전담해왔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소장과 부소장을 맡은 게 바로 조국 수석이다.
지난 3월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photo 유튜브 화면 캡처
조 수석은 지난 3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이다. 조 수석은 ‘조국을 지켜라!’편에 출연해 1시간 동안 공수처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방송 끄트머리엔 ‘조 수석이 권력기관 개편을 위해 민정수석 자리를 수락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방송에서 조 수석은 공수처가 필요한 이유로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제도’를 들었다. 두 제도 모두 2014년 국회를 통과해 법제화됐다. 상설특검은 법무부 장관과 국회가 요청하면 특별검사를 임명해 검찰이 아닌 특별검사가 조사하는 제도다. 특별감찰관은 청와대 내부를 감시하는 감찰관이다. 정확히는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척, 대통령 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이 감찰 대상이다.
2014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연초부터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도입에 매달렸다. "여당이 연말국회에서 약속한 상설특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확정해야 한다."(1월 3일, 신경민 당시 최고위원)
"여야가 합의한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제도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2월 5일, 김한길 당시 당대표)
"2월 말까지 하기로 한 상설특검 약속을 즉각 이행하기 바란다."(2월 24일 우원식 최고위원)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 도입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검찰을 바로세우는 첩경이다.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의 즉각적인 도입에 협조할 것을 정부여당에 촉구한다."(2월 26일, 박수현 당시 원내대변인)
"대통령 측근비리 척결을 위한 상설특검제 특별감찰관 도입공약."(2월 27일, 정성호 당시 원내수석부대표)
다시 조 수석의 주장으로 돌아가보자. 그의 논리는 이렇다. 두 제도 모두 활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공수처가 필요하단 얘기다. 조 수석의 주장대로 상설특검은 도입 이후 단 한 차례도 발동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회나 법무부 장관이 요청하지 않아서다. 특별감찰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2019년 5월 현재까지 2년간 쭉 공석이다. 특별감찰관은 없지만 사무실은 개점휴업 상태로 존재한다. 2년간 지출한 임대료만 12억원(매월 5000만원)이다. 여기에 공무원 4명이 파견되어 있다. 국회에서 감찰관 후보를 추천해 대통령에게 보내야 하는데 후보 선정도 안 됐다. 후보 선정 방식에 여야 간 이견이 있다는 이유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보인 여당의 행동력을 보면 2년째 공석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검찰을 바로세우는 첩경이라며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도입을 주장하던 2014년과 현재가 다른 점은 청와대의 주인뿐이다.
외국에 유사기관 찾기 힘든 공수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전 세계 정부 조직에서 비근한 예를 찾기 힘들 만큼 막강한 조직이다. 핵심은 기소권이다. 조국 수석과 참여연대, 민주당은 줄기차게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혜련 의원은 의안 제출 취지를 설명하며 ‘홍콩의 염정공서와 싱가포르의 탐오정국’을 예로 들었다. 백 의원이 알고 언급했는진 모르겠지만, 두 조직 모두 백 의원이 주장하는 공수처와 크게 다르다. 일단 기소권이 없다. 홍콩 염정공서는 법무부가,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참여연대(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가 배포 중인 홍보물엔 미국(정부윤리처), 영국(중대비리조사청) 등 여러 나라가 공수처류의 정부 조직을 운영 중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정부윤리처(OGE)는 공무원의 부패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을 하고 법령을 홍보하는 일종의 비리 예방 조직이다.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도 없다. 영국의 중대비리조사청(SFO)은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갖춘 조직이 맞다. 이름(Fraud)처럼 대형 사기나 기업 문제 등 주로 경제범죄를 담당한다. 검찰총장 산하 조직으로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한국으로 치면 예전에 존재했던 대검 중수부쯤으로 보면 된다.
참여연대와 정부 구상 속 공수처와 비슷한 조직을 굳이 찾자면 있긴 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부패근절위원회(PCCB)다.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구다. 대통령 직속이지만 기소 여부는 역시 검찰총장이 결정한다.
대통령 가족은 기소대상 제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배포 중인 일명 ‘공수처법 팩트체크’ 카드 뉴스. 사실이 아닌 내용이 많다.
두 번째 특징은 공수처장 임명에 대통령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공수처장 임명 과정을 보자. 일단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된다.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 그 외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 등 총 7인으로 이뤄진다. 7인 중 4명 이상이 청와대와 이해관계가 깊은 인물이다. 7명 중 6명이 동의하면 후보가 선정되는데 2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올린다. 이 2명 중 대통령이 1인을 택해 처장으로 임명한다.
공소처의 기소 대상에 유독 대통령의 가족이 빠진 점도 눈에 띈다. 정부안대로라면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대통령의 가족이면 기소되지 않지만 판사나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가족이면 기소당한다.(백혜련안 제3조 2호)
셋째, 직권남용이라는 논란이 많은 조항을 수사대상 범죄로 삼는다. 백혜련안 2조 3호 가목을 보면 고위공직자의 범죄로 ‘형법 제122조부터 제133조까지의 죄’를 들고 있다. 이외에도 수십 개의 법조항이 거론되어 있지만 형법 122조와 123조만 보자. 형법 122조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죄를 다룬다.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123조는 직권남용죄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직무유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직무유기죄도 그렇지만, 특히 직권남용죄는 법조계에서 논란이 많은 조문이다. ‘직권 남용’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탓이다. 법의 구성요건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시각이 많다. 헌재에 위헌 제청된 적도 있다. 검찰도 직권남용죄 적용에 신중했다. 사익 추구가 명백히 병행됐을 때만 처벌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기소해도 무죄율이 높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경환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도 줄줄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직권남용 조항을 다시 헌재에 위헌 제청하거나 좀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복수의 법조계 인사들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를 들어 고위공무원을 수사하겠다는 건 정권 입맛대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찍어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 A씨의 말이다. "한마디로 청와대 사직동팀을 부활해 확대개편하겠다는 거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에 민정수석, 사정비서관을 둔 것부터가 특이한 거다. 선진국의 대통령 비서실을 봐라. 어디에도 없다." ‘청와대 사직동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대중 대통령 시기까지 존재했던 일종의 청와대 직속 수사팀이다.
복수의 검찰 출신 인사들은 ‘정치검찰이 문제면 검찰을 독립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인사권, 예산권 모두 최대한 독립을 보장해주면 눈치 안 보고 수사할 수 있단 얘기다. 조국 수석은 알릴레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수처장 임명 과정이 야당이 거부하지 못하는 검찰총장 임명 방식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그렇다면 검찰총장 임명 방식을 공수처장처럼 바꾸면 간단해진다.
지난 3월 26일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했다. 대통령 딸 문다혜씨 가족의 해외이주로 인한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감사였다. 청구 9일 뒤인 4월 4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했다. 뜻밖의 얘기를 했다. "그 부분(문다혜씨 해외 경호 비용)은 감사원 감사 청구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사원에서 그 부분을 감사할 걸로 알고 있는데 (경호 비용이) 일정 부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습니다."
감사원은 애초 답변기한(1개월)을 연장하면서 감사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감사원이 공익감사청구를 피하기 위해 국내 정상급 로펌 두군데에 법률 자문을 맡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 홍보담당관실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다. 돌아온 답이다. "감사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중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외부 로펌에 법률 자문을 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의혹이 맞다면 감사원은 감사청구자에게 감사 여부를 답변하진 않은 채 청와대 비서실에만 감사 착수 가능성을 언급하고, 외부 로펌에 법률 자문을 맡겼단 얘기다. 조국 수석과 참여연대가 공수처 설치에 매달리는 동안 청와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0/20190510018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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