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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경제적 공진화(共進化) 란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려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에서 붉은 여왕이 체스판 위에서 열심히 뛰는 이유를 앨리스에게 설명한다. 거울 나라에선 뛰지 않으면 뒤로 처지게 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 반 밸런이 이를 진화의 원리에 적용해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로 개념화했다. 치타가 빨리 뛰는 건 먹잇감인 가젤의 뒷다리 근육이 발달해 잘 도망가기 때문이다. 포식자인 치타도, 먹이인 가젤도 저녁 식사를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더 빠른 속도로 달리게 진화했다.

붉은 여왕 가설은 공진화의 핵심을 잘 보여 준다.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는 한 종(種)이 진화하면 관련된 다른 종도 함께 진화하는 현상이다. 1964년 생물학자 폴 에리히와 피터 라벤이 나비와 식물의 상호 진화를 연구하면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 붉은 여왕이 달리기를 중단하면, 즉 경쟁을 포기하는 순간 종의 멸종으로 이어진다는 공진화 개념은 무한 군비경쟁을 연상시킨다. 죽어라 힘들게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 현대사회의 고달픈 인생을 붉은 여왕에 빗대기도 한다. 공진화 개념은 사회학·경제학·경영학 등으로 폭넓게 퍼져 갔다. 특히 협력과 상생이 새로운 기업 전략으로 부각되면서 경영학에서 좋은 의미의 사례연구가 활발했다. 참여자에게 이익을 나눠 생태계 형성에 성공한 애플의 앱스토어나 페이스북의 플랫폼 전략이 대표적인 공진화 사례로 꼽혔다.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드루킹 김동원씨가 이끌던 그룹 이름이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이다. 드루킹은 경공모를 설명하면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부도덕하고 무능한 재벌 오너들을 쫓아내고 기업과 경제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라고 썼다. 경공모를 동학 농민 혁명이 발발한 지 꼭 120년째 되는 2014년에 발족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공진화는 통상적인 경제민주화 논의를 훌쩍 뛰어넘는다. 삼성을 해체해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 지지자들로부터 주식 10주 이상씩 의결권을 위임받아 재벌의 핵심회사 하나를 장악하면 경제에 쓰나미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다, 따위의 주장은 몽상가의 허풍이 됐다. 역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체스판 위의 붉은 여왕처럼 아무리 열심히 뛴들, 방향이 잘못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뿐더러 현상 유지조차 힘들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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