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17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14일)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주보다 4.1%포인트나 오른 45.5%였고, 부정 평가는 4.5%포인트 내린 51.6%였다. 리얼미터 측은 “조 장관 사퇴 이후 상당히 탄력적인 지지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하루 뒤인 18일 나온 한국갤럽 조사는 정반대였다. 한국갤럽은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한 39%라는 집계를 내놨다. 부정평가도 53%로 전주보다 2% 늘었다. 완전히 거꾸로 간 두 조사를 놓고 정치권에선 “도대체 어떤 여론이 맞는 거냐”는 아우성이 나왔다.
#2. 지난 8월 한 방송사 간부 A씨는 대형 여론조사업체로부터 대통령 국정 지지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조사원은 설문 조사를 마친 뒤 “다음 조사 때 선생님께 또 전화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A씨가 “여론조사는 무작위가 원칙인데, 응답자를 미리 정해서 전화하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따지자, 조사원은 “여론조작을 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A씨는 “조사업체들이 말로는 무작위 조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영업비밀’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어 자체적으로 확보한 응답자 표본을 활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는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큰 손’이다. 청와대의 국정운영 방향, 정당 공천자 결정, 야당의 대여투쟁 기조, 국책과제 추진 여부 등 주요 이슈마다 여론조사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냐는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객관성과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은 여론조사가 남발되면서 온라인에선 ‘여론조사 무용론’마저 나온다.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란 중 대표적인 것이 문 대통령 투표층의 ‘과대 표집’(특정 집단의 여론이 실제보다 부풀려 수집) 현상이다. 지난 5월 2일 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전화 면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51.6%, 부정 평가는 44.6%(모름 및 무응답 3.7%)였다. 그런데 응답자 중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뽑았다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 1000명 중 537명(53.7%)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2017년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기권자 포함) 대비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31.6%(4247만9710명 중 1342만3800표)였다. 전체 유권자 표본을 반영한다면 응답자 1000명 중 문 대통령을 뽑았다는 응답자는 316명 언저리가 나오는 게 맞지만, 이 조사에서는 537명으로 크게 불어난 것이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의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18.5%였는데, 이 조사에선 홍 후보를 뽑았다는 응답자는 10.8%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은 실제보다 더 많이,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보다 적게 여론조사에 참여한 셈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조사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가령 리얼미터가 5월 16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ARSㆍ전화면접 병행)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평가는 48.9%(부정평가 45.8%) 였는데, 응답자 중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찍었다는 비율은 53.3%였다. 칸타코리아의 9월 조사(전화면접)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문 대통령을 뽑았다는 응답자는 49.2%로, 실제 문 대통령의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보다 17.6%포인트 높았다.
흥미로운 건 과거 정부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39.0%였고,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36.3%였다. 그런데 2014년 5월 디오피니언의 여론조사(전화면접ㆍ인터넷 조사)에서 응답자 중 박 전 대통령을 뽑았다고 대답한 비율은 46.6%로 실제보다 7.6%포인트 높았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의 2015년 10월 조사(전화면접)에선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54.5%로 준수한 편이었는데, 응답자의 56.2%가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뽑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론조사에서 현직 대통령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다 반영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의 해석도 다양하다. 이용구 중앙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야당보다는 정부나 여권 지지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성향이 있다”며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적극적인 응답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현재 정권을 잡고 이를 사수해야 하는 세력의 지지층은 여론조사 응답도 대통령을 도와주는 ‘정치적 행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며 “반면 정부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여론조사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칸타코리아 이양훈 이사는 “현직 대통령을 찍었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은 건 실제 선거에선 다른 후보를 뽑고도, 승리한 쪽을 찍었다고 응답하는 응답자들의 경향이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의 ‘선거여론조사 기준’에 따르면 여론조사는 성별, 연령, 지역별 구성 비율을 실제 전체 유권자의 인구비례에 맞춰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게 응답하면 실제 성비에 맞게 가중치를 부여해 성비를 보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선 득표율에 따라 결과를 보정하는 여론조사는 드물다.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응답자의 정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는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자의 성별 편중 문제도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리얼미터의 최근 5개 조사(10월 8일 기준)에서 응답자 중 남성의 비율이 약 65.0%로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중에 실제 성별 비율에 맞게 가중치를 곱하긴 하지만, 응답자 자체에 성별 편차가 큰 건 조사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른 업체 조사에선 보통 44~55%의 성비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리얼미터와 마찬가지로 ARS조사를 하는 리서치뷰의 조사에서도 남성응답자 비율은 평균 53.7%였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리얼미터 측이 자체 확보한 표본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관련 논란에 대해 리얼미터 측은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설문 문항이 특정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편파적으로 작성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리얼미터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지난달 21일, 30일 두 차례 발표했다. 21일 조사에선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1.4%, 반대가 41.2%였다. 그런데 30일 조사에선 찬성이 61.5%로 9일 만에 10.1%포인트나 뛰었다. 반대는 33.7%로 찬성의 절반에 그쳤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조사를 인용,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미묘하게 달라진 두 여론조사의 질문 내용이 응답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아래는 실제 설문 문항.
#.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 법안 제정을 놓고 검찰개혁의 핵심이라는 입장과 대통령 권력 강화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수처를 설치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일 21일 발표, 찬성 51.4% 반대 41.2%)
#. 선생님께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 고위공직자들의 범죄를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를 설치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일 30일 발표, 찬성 61.5% 반대 33.7%)
두 설문의 차이는 뭘까. 신율 명지대 교수는 “30일 설문은 국회의원 등 수사대상을 열거하는 식으로 공수처의 당위론에 무게를 뒀다. 범죄가 있다면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게 당연하기에 공수처가 긍정적인 것이라는 영향을 받게 된다“며 “반면 21일 설문은 여야의 상반된 주장이 담겨 의견이 갈리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21일 설문보다 30일 설문이 공수처 찬성 여론이 잘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익명을 원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공수처의 여론 추이를 알려면 질문내용과 보기 순서까지 같아야 한다. 두 여론조사는 전혀 다른 질문이 담겨 여론의 추이를 확인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리얼미터는 지난 4월 15일, 18일 이미선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당시 이 후보자의 수십억 원 대 주식 거래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었는데 15일 조사에서는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응답이 54.6%, 적격 응답이 28.8%였다. 그런데 18일 조사에서는 갑자기 반대가 44.2%, 찬성이 43.4%로 우호 여론이 급격히 상승했다. 문 대통령은 하루 뒤인 19일 이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했다. 급격하게 바뀐 여론 뒤에는 ‘달라진 설문’이 있었다. 두 조사의 설문 문항은 다음과 같다.
#. “최근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월 15일 발표, 부적격 54.6% 적격 28.8%)
#. “여야 정치권이 이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국회에 다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월 18일 발표, 임명 반대 44.2%, 임명 찬성 43.3%)
이용구 중앙대 명예교수는 “두번째 조사는 설문 문항에 갑자기 문재인 대통령이란 언급이 두 차례나 등장했다”며 “이 후보자 자체에 대한 적격ㆍ부적격 의견을 물은 첫번째 조사와 달리 두번째 조사에선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우호적인 응답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조사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크게 어긋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19대 대선 직전 공표된 여론조사에선 다수의 조사업체가 2ㆍ3위 후보의 순서를 맞추지 못했다. 14건 중 10건(5월 2~3일 발표)이 ‘문재인-안철수-홍준표’ 순으로 지지도가 높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개표 결과 득표율은 ‘문재인(41.1%)-홍준표(24.0%)-안철수(21.4%)’ 순이었다.
지난해 6월 13일 경기지사 선거도 여론조사가 빗나간 대표적 사례다. 한국갤럽은 선거 직전 발표한 여론조사(6월 5일)에서 이재명(60.2%) 민주당 후보가 남경필(18.9%) 한국당 후보를 41.3%포인트 앞선다는 결과를 내놨다. 실제 득표율은 이재명 56.4%, 남경필 35.5%로 격차는 20.9%포인트였다.
올해 4ㆍ3 보궐선거에서도 빗나간 예측은 이어졌다. 선거일 일주일 전 조원씨앤아이는 창원 성산 보선에서 여영국 정의당 후보(49.9%)가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25.8%)를 월등히 앞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개표함을 열어보니 여 후보(45.75%)와 강 후보(45.21%)의 격차는 0.54%포인트로 초박빙이었다. 여론조사가 ‘숨어있는 야당 지지층’을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2017년 2월부터 안심번호가 도입됐지만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 안심번호는 조사 대상자의 실제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지 않는 일회용 가상번호인데, 조사업체에서 성별, 연령별, 지역별 번호를 이동통신사에 요청하면 안심번호 형태로 제공 받는 것이다. 하지만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도 실제 선거 결과와 어긋나는 사례가 많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성별, 연령, 지역 등을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는 반면 응답자의 정치성향이나 지지 정당 등 변수가 많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는 여론조사’까지 등장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9월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 시기에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2%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44.7%였다. 같은 업체에서 10월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5.5%가 정치 관련 여론조사에 대해 ‘대체로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조사 방법 같다‘고 답했다. 야당에 유리한 조사라는 응답은 18.2%, 공정한 조사라는 응답은 18.9%였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관련 데이터를 일반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더 세밀하게 공개하고, 조사의 공정성이나 적절성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용구 명예교수는 “여론조사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큰손’인데 반해 형식적인 규정 준수 여부를 평가하는 것 외에는 공정성을 모니터링할 기구가 없는 상황”이라며 “여론조사, 통계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기구를 만들어 설문 문항의 적절성, 여론조사 과정의 공정성, 데이터의 신뢰성 등을 투명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준웅 교수는 “현재 공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는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과대 표집 등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응답자의 대선 투표 정보, 지지 정당 및 이념 정보 등을 자세하게 공개해 여론조사를 접하는 시민들이 적절하게 조사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정호 여심위 심의팀장은 “단순히 지지율이나 찬반을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등 설문 결과에 담긴 세밀한 맥락까지 분석할 수 있는 조사 설계가 절실하다”고 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론조사를 만능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여론의 전반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유용한 ‘참고서’ 정도로 인식해야 한다”며 “같은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조사결과도 있는 만큼 여론조사의 오차나, 불확실성을 감안하고 여론조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ㆍ최현주ㆍ현일훈ㆍ손국희ㆍ정진우ㆍ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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