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문희상 면전서 "김정은, 남한 무장해제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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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처럼 우방되면 미 국익 도움" 협력 요청에
"1997년 방북, 주민 참상본 뒤 북한 정권 못믿어,
싱가포르 회담도 성과 없는 실패작, 쇼 아니었나"
'일왕 사죄' 논란 문 의장엔 "한·일관계 악화 우려"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직접 쓴 '만절필동(황허는 만번 굽이쳐도 동쪽으로 흐른다)' 족자를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이 베트남처럼 우방이나 친미국가가 되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 북한의 진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무장해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국회 대표단과 설전 도중 한 말이다. 의회를 방문한 문 의장 일행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하자 "싱가포르 회담도 쇼지 않았느냐"며 논쟁을 벌였다. 면담은 예정된 30분보다 두 배인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일왕 사죄"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문희상 의장에겐 "한·일 관계가 악화해 우려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포함한 여야 대표단이 12일 워싱턴의 미국 의회를 방문해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믿지 않는다"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1시간여 논쟁을 벌였다.[연합뉴스]
대표단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이날 비공개 면담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에 한국이 기대하는 게 뭐냐"고 먼저 물었다고 한다. 정동영 대표가 "북한이 베트남처럼 미국의 우방, 친미국가로 바뀌면 미국의 국익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느냐"며 "한국 국민도 탈냉전으로 가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동영 평화민주당 대표가 12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펠로시 하원의장과 면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이광조 JTBC 카메라기자]
이에 펠로시 의장은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면서 1997년 하원 정보위 위원들과 방북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북한 주민들의 가난과 비참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북한 정권을 믿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지난해 펠로시 의장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대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북한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과는 많이 변했다. 지금 북한은 경제개발을 원할 만큼 많이 달라졌으니 가까운 시일 내 다시 방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정동영 대표가 "트럼프의 북핵 외교는 과거 북핵 해법의 원조인 클린턴 정부 시절 '페리 프로세스'를 잇는 정책이 아니냐"고 하자 펠로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페리 프로세스는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이 1999년 마련한 미사일 발사 중단→비핵화→평화체제로 이어지는 3단계 해법이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핵화라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불신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미국 민주당의 기류를 보여준다. 이어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도 아무 성과가 없었고 실패작, 쇼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한다는 증거, 실제 행동을 보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광조 JTBC 카메라기자]
펠로시 의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무장 해제(demilitarization)를 하겠다는 것"이란 말까지 했다. 배석한 한인 출신 앤디 김 하원의원도 "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보이는 조치를 한 게 없다"는 취지로 펠로시 의장에 동조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 대표는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국제 참관단 아래 폐기하고 북한 핵 능력 80%를 차지하는 영변 단지를 해체하면 그것이 증거가 아니냐"고 했다. 대표단에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는 "펠로시 의장과 같은 입장"이라며 "지난해처럼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을 합의하거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논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펠로시 의장은 논쟁이 길어지자 "나는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면서도 "당신들 이야기처럼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기를 바란다"고 마무리지었다.
펠로시 "한·일관계 악화 우려", 문 의장 "균형 있게 봐달라"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워싱턴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일왕 위안부 사죄 발언은 평소 지론이며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이광조 JTBC 카메라 기자]
펠로시 의장은 이날 문희상 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을 의식한 듯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해 우려스럽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에 문 의장은 "균형 감각을 갖고 봐달라"며 "중국·러시아 등 동북아 큰 틀에서 한일 공조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문제로 아웅다웅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문 의장은 이후 특파원들과 만나 "일왕 사죄 발언은 아베 총리를 포함해 일본 지도자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납득할 수 있게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이라며 "일본 일부 세력이 국내 정치적으로 악용하느라 문제를 키운 것이지 내가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펠로시 의장의 발언도 일본 측에서 사전에 한마디 해달라고, 쉽게 말해 혼내 주라고 했는지 의도적 발언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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