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 자리, 우석훈 교수의 특강이 시작됐다. 대놓고(?) 집권 여당과 현 정부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그였기에 총선 이후 약간은 의기소침한 듯 피곤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젊은 세대에 대한 변화를 촉구한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보는 그의 안타까움 그리고 간절한 바람을 들어봤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 자리, 우석훈 교수의 특강이 시작됐다. 대놓고(?) 집권 여당과 현 정부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그였기에 총선 이후 약간은 의기소침한 듯 피곤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젊은 세대에 대한 변화를 촉구한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보는 그의 안타까움 그리고 간절한 바람을 들어봤다.
20대 박사가 된 유학파, 유난히도 최연소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경제학자, 전 UN 기후변화협약 정책분과의장……. 우석훈 박사의 가공할 만한 이력이다. 그런데 이 사람, 겉보기에는 영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운동화 차림을 즐기고 어눌한 표정과 농담으로 상대를 웃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심코 던지는 말 속에 날카로운 철학이 숨겨져 있다. 정부 든 대통령이 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막말(?)에 버금가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저서 『88만원 세대』로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과 세대불균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화제를 모으기도 한 그는 최근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현 정부 하에 일어나고 있는 경제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층, 정부와는 정 반대쪽에 서서 살아 온 셈이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좌파’라고 한다. 좌파의 정확한 정의와 그가 하는 말이 얼마나 맞아떨어지는 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게다가 그가 하는 말과 철학은 젊은 세대를 넘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아마도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가식이 없는 그의 행동처럼 그 말 속에도 거짓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그가 얼마 전 『1인분 인생』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때론 생각처럼 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 좌절감을 겪으면서도 꾸준한 집필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바람은 과연 무엇일까.
‘1인분 인생’, 이 질문은 나에게도 던져진 질문이다. 좋든 싫든, 나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야 하는 삶을 살았고, 내가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작게는 회사, 좀 크게는 국가, 그리고 아주 약간은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UN 공식문서에 내 이름이 적혀 나왔을 때, 솔직히 그것 자체로도 진짜 기뻤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과연 1인분 인생을 살았던가, 혹시라도 많은 사람들의 묵묵한 희생 위에 나 혼자서만 잘난 척한 것 아닌가, 그런 걸 마흔이 넘어서야 슬슬 돌아보게 되었다. -『1인분 인생』 中 | ||
“마흔 살 때 생각해봤던 몇 가지 일들을 가지고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를 생각하면서 쓴 책이에요. 원래 제목은 사실 이게 아니었어요(웃음). 처음에는 『경제철학을 위한 짧은 에세이』로 정했죠. 딱딱한 얘기가 많았는데 빼버리고 결국 마지막 버전이 『1인분 인생』이 된 거죠. 마흔 살이 되면서 이명박 시대에서 느꼈던 것들로 시작해 나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어요. 20~30년 전에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잘 안하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가난해졌다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렸지만 경제학자로서 그는 ‘한국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가난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설명은 IMF 경제 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YS 정부 말기에 IMF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한국 경제 성장률은 -4%대로 떨어져요. 그 이후 3~4%정도 올랐다가 2007년 5%까지 가죠. 바로 지난 대선 때 즈음이죠. 2007년 당시 한국 경제가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그게 바로 현 정부의 747공약이에요. 한국은 7%대까지 갈 수 있었는데 좌파정권 때문에 2%가 부족했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2011년 즈음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망은 생각보다 빨리 닥쳤다. 대선 다음 해인 2008년 -3%까지 떨어진 것. 그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을 반복해 온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으로 우울한 시기죠. 되는 일은 없고, 개인은 계속해서 가난해지는 시기, 부자라고 다를 것이 없어요. 이 시기에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가난해 졌죠. 제 고민은 그렇다면 이 가난이 언제 온 것인가 에요. 사실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탓을 하는데, 실제로 2003~2004년부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제일 큰 것은 앵겔지수가 증가한 반면 문화관련 소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민소득도 함께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부자의 꿈이다.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경제 성장 과정에서는 두 가지 패턴이 나타난다. 즉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먹는 것에 대한 소비, 앵겔지수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반면 문화 관련 지출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3년부터 한국은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드러나는 특징이 일반적인 양상과는 반대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2003년 전 까진 TV에 문화관련 프로그램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언젠가부터 음식채널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어요. ‘맛집탐방’같은 거죠. 소위 ‘여사님(영부인) 관심사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먹거리에 관한 것이었고요.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있어서 하는 거였죠. 즉 국민소득 2만 달러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먹는 것에 지출을 늘렸다는 것이고 이걸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문화적 인간에서 돼지가 돼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해석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 가설을 적용해봤죠. ‘우리의 실질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줄었다’라고 하면 설명이 되요.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난해졌어요. 가처분소득으로 이야기하면 물가 상승률에 비해 살 수 있는 것이 줄었죠. 저축도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고요.”
그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이유를 “지난 10년간 경제중심주의로 살며 개인에 대한 질문이나 행복에 대한 질문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 경제중심주의 하에서 불거진 것이 그가 줄 곳 이야기한 세대 간 불평등이다.
“한국의 50대는 우리나라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어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온 시기에 성과물이 집중 돼 있는 거죠. 반면 20대는 현재로서 제일 가난합니다. 40대는 하우스 푸어가 대부분이고요. 30대는 미처 집 살 기회를 얻지 못했던 덕분에(?) 그나마 좀 덜하죠.”
삼성전자 입사가 꿈이 아이들
그의 이야기 주제는 ‘꿈’으로 이어졌다. 사실 그는 10대부터 지금까지 꿈이 없었다고 한다. 굳이 꼽으라면 로봇태권브이를 만든 ‘김 박사’정도랄까. 그러나 정작 꿈이 없는 자신보다 안타까운 것은 꿈이 아닌 것을 꿈이라 믿는 10대의 현실과 직면할 때다.
“대선이 끝나고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계획은 없어요. 저는 정말 꿈이 없었어요. 갖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있어요. 사람이 꿈이라고 하면 ‘달에 가고 싶다’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음악PD가 되고 싶다고요? 그건 직업일 뿐이지 꿈은 아니잖아요. ‘음악’이 꿈은 될 수 있겠네요. 제가 어떤 중고등학교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한 번에 3분의 1가량이 삼성전자에 입사하는 것을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로서는 그런 학생들은 꿈이 없다고 밖에 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집단 조작 같은데 들어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그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삼성전자 역시도 그 꿈을 달갑게 받아주지는 못할 듯하다. 엄마표 귀공자들은 사절이라는 말이다.
“몇 년 전에 삼성에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자신들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와 싸우는 법은 알겠는데 직원의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신입직원의 어머니가 전화 와서 ‘우리 아이가 힘들어서 출근을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직원은 미안하지만 기억해 뒀다 나중에 자르라고 했어요.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라더군요.”
우석훈 박사는 이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엄마의 보살핌으로 양성된 서울 대치동 학원가 인재(?)들이 망가져 가는 과정을 확인했다. 그들이 한계는 대학 1학년까지라는 것. 2학년부터는 일반계 고등학교 출신이 특목고 출신보다 높은 학점을 받기 시작하고 4학년이 되면 농어촌 고교출신이 상위권을 형성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학원빨(?)로 온 아이들은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엄마들에 의해 가능한 것은 삼성전자 대리급이 맥시멈이라고 생각해요. 대치동 학원 원장들 역시 그러더군요. 자기들이 만든 애들은 서른 한두 살까지는 버티는데 그 다음부터는 힘들 거라고. 아는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나쁜 사람들이란 생각밖에 안들어요.”
배짱이가 이기는 창의성 우위의 상황
문제는 시대의 변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석훈 박사는 “학원 중독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난다”고 단언한다. 탈 포디즘의 시대에 포디즘, 즉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걸맞은 인재교육을 받는 것은 소용없다는 말이다.
“세계적인 추세는 탈 포디즘이에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죠. 그런데 부모나 학원 선생들이 살았던 시대는 포디즘 시대에요. 너무 잘나도 안되고 못나도 안되는, 옆 사람과 똑같은 속도의 사람을 만들던 시대죠. 우리 대통령께서 살았던 시기도 그렇고요. 이들이 생각하는 미래하고 우리가 진짜 만나게 되는 미래는 달라요.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창의성’인 거죠.”
창의성의 시대에 한국의 현주소는 어떨까. 포디즘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창의성조차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규격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생산되는 창의성’을 꿈꾸는 이들이 만든 풍경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대치동 사거리에서 실제로 본 모습이에요. 노란 버스가 오더니 다섯 살에서 여덟 살짜리 아이들을 태워가더군요. 버스에는 ‘창의성전문학원’이라고 붙어있었고요. 저는 노예선 같이 보였어요. 집 앞에서 끌고 가서 시키는 대로 하게 하고 다시 보내주는 아이가 창의적일 리가 없잖아요. 창의성은 배울 수 없는 것임에도 가르치면 된다는 식이죠. 창의성의 특징은 노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는 거예요. 개미와 배짱이가 뒤집힌 셈이죠. 너무 놀다가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 그때가 가장 창의적인 것이고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그때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유일하게 창의적인 순간이죠. 앞으로 사회는 노는 놈을 절대 이길 수 없는 시대로 가게 될 겁니다.”
우 박사는 그 예로 스위스, 노르웨이 등 국민소득 6만 달러가 넘는 국가들을 예로 들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평균 3배, 더구나 노르웨이의 국민소득은 9만 달러에 달한다. 적어도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기준에서 그런 목표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 반대라는 것이 우 박사의 설명이다.
“제가 스위스에 있을 때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깜박하고 담배를 사지 못했어요. 카페에서 물어보니 벨기에로 한 시간 반 정도 가서 사면된다더군요. 스위스에 담배를 안파는 게 아니라 문을 닫기 때문이에요. 스위스는 오후 4시면 관공서가 문을 닫고 5시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요. 그런데 그런 나라가 1인당 국민 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 거예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프랑스도 마찬가지에요. 보통 10시에 관공서가 문을 열면 12시까지 일하고 2시간을 점심식사 시간으로 보내요. 그러다 4시면 문을 닫죠. 매일 같은 시간에 여는 것도 아니에요. 때론 오후에 문을 열 때도 있죠. 최근에 프랑스 일각에서는 수요일 수업을 쉬자는 의견이 제안되고 있어요. 창의성 시대 교육은 사실 이렇거든요. 개인에게 많은 시간을 주는 대신에 그 시간을 사회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게 문화기관, 도서관을 많이 갖춰놓고 있죠.”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주 5일 수업이 실시 된 것과 발맞춰 학원가에 새로운 주말프로그램이 생기는 상황이다. 밤 10시까지 학원 수업도 너무 이르다며 연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혼자 생각할 시간도 없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역시 문제는 기성세대들이다.
“4대강을 보세요. 사실 괜히 한 거잖아요. 20대 청춘들의 미래를 강바닥에 처박은 거죠. 놀면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괴롭히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해보고 싶지만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힘들어요. 대부분이 50대 보수거든요. 경제신문 데스크를 잡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제 이야기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창의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거죠.”
보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대를 꿈꾸며
그는 자신의 책 제목과 달리 ‘내 스스로도 1인분 이상을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명예나 노력 위에 서 있는 게 아닌가’생각한다고 했다. 만약 아내라는 든든한 언덕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 고백하는 그. 어쩌면 우리는 조금 모자란 1인분 인생들이 서로 조금씩 의지하고 힘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가 어떨 때 보람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니까 돈과 상관없는 일을 할 때 그렇더군요.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 이게 나에게 돌아오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서 할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돈과 명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죠. 그러나 저는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은 그런 보람으로 움직이는 국민들이 절반만 있으면 가능해요. 하지만 이번 총선을 보니 땅값으로 움직이는 국민이 절반정도 되는 것 같더군요(웃음). 자신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보람을 찾는 1인분의 삶을 살며 행복해지는 게 우리가 만들 다음 단계라고 생각해요. 보람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사회가 우리가 만들 사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