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좌파 장기집권의 ‘엔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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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보니, 오늘이 문재인 정권 출범 965일째 되는 날이다. 무려 100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정권은 무섭도록 집요하게 ‘대한민국 교체’를 기도(企圖)해 왔다. 입법 사법 행정 3권,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기관 세력 교체에 골몰했으며 시민·사회·노동 단체를 바꿔 정권 옹위세력으로 만들고 있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뒤흔들고, 무엇보다 70년 동안 대한민국 안보의 보루였던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남북군사협력과 북-중-러 체제 편입으로 대체하려 한다.
기존 체제를 갈아엎어 새로운 체제로 교체한다는 측면에서 문재인은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 대통령의 첫 외부일정은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방문. 그 일성(一聲)은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뒤, 민노총은 한국노총을 누르고 제1노총이 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 출신들이 대거 민노총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권력이 민노총의 불법 과격시위에 눈을 감으면서 ‘민노총 세상’이 되자 세(勢)가 급속히 불어난 탓도 크다. 김영삼 정부 때 설립된 민노총이 한국노총보다 커진 건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과정에서 신세를 진 민노총에 가장 확실한 보은(報恩)을 한 셈이다.
노동권력 교체에서 보듯, 이런 식으로 2019년 말까지 ‘대한민국 교체’가 착착 진행돼왔다. ‘적폐청산’의 미명 아래 이루어진 행정권력의 교체는 그 서곡(序曲)이었다. 사법권력 교체는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대법원장과 대법관 9명을 임명했으며 남은 임기에 4명을 추가로 임명하게 된다. 합법적으로 14명 가운데 13명을 임명하게 되는 것이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중도 하야하는 바람에 임기가 짧아진 탓이 크지만, 박 전 대통령은 4년 2개월여 임기 동안 5명의 대법관을 임명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현 정권에서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묘사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위법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은 이런 사법권력 교체의 흐름 속에 나온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권력 교체의 ‘엔드(End) 게임’이 남아 있다. 입법권력 교체다. ‘4+1’ 협의체라는 ‘듣보잡’ 야합기구까지 만들어 국회의원 선거의 룰을 강행처리한 것은 그 마지막 게임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아빠 찬스’에 급급했던, 격(格) 떨어지는 국회의장은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스포츠 게임에 비유하자면 경기진행요원(행정부)을 바꾸고 심판(사법부)을 바꾼 뒤 경기의 룰까지 바꾼 셈이다. 극렬한 응원단(민노총·문빠)까지 우군인 데다 불공정 게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감독관(검찰)을 옥죄다 못해 더 센 상위감독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까지 만들려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좌파 불패(不敗)의 그라운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관중(국민)마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확연히 둘로 쪼개졌다. 애초부터 국민통합이라고는 안중에 없던 좌파 집권세력의 편 가르기 정치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지향점은 오직 하나, 좌파의 장기집권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버리기만 한다면 불행 중 다행일 수도 있겠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의 안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경자년 새해에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희망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양식 있는 국민의 손에 달렸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 혹은 생각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새해가 되길 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