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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지하철 김명수'는 연기였나

오피니언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입력 2019.11.07 03:12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김명수 대법원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2017년 8월 22일의 일이다.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 날이었다. 춘천지방법원장이었던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며 이날 대법원을 방문했다.

그는 이때 관용차를 쓰지 않았다. 춘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내려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해 대법원 바로 앞 서초역에서 내렸다. 그가 대법원 청사로 걸어 들어오는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김 대법원장 측은 "춘천지법원장이 아닌 대법원장 후보자로서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장에게 배정된 관용차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나랏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31년 재판만 한 사람(본인)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이로부터 805일 뒤인 지난 5일 대법원은 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2017년 대법원장 공관(公館) 리모델링 때 재판 등에 써야 할 다른 예산 4억7000만원까지 공사비로 돌려썼다는 감사원 지적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한다는 차원에서 알린다"면서 공관 예산을 전용(轉用)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김 대법원장 취임 전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호화 리모델링' 논란은 전임인 양승태 대법원장 소관이고, 김 대법원장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김 대법원장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이 말이었을 것이다.

법원 안에서 나오는 얘기는 달랐다. 전용 예산 4억7000만원은 공관 내부 인테리어 비용으로도 쓰였다. 그런데 이 작업을 챙기고 지시한 사람이 김 대법원장 부부였다는 것이다. 법원 내에선 "(대법원장 부부가) 공관 내부의 벽지와 커튼도 직접 골랐는데 상당히 고가(高價)였다" "공관 안 계단 난간까지 손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법원은 공관 벽지·커튼의 종류와 가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또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공관 외벽을 이탈리아산 고급 석재로 꾸밀 예정이라는 보고도 받았다. 과하다고 생각했다면 바꾸라고 지시할 수 있었지만 그리 안 했다.

그렇게 리모델링된 공관에 그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은 판사 아들과 변호사 며느리를 불러들여 같이 살았다. 공관에 공짜로 살게 해 강남 아파트 분양 대금을 마련할 수 있게 도운 것이다. 손주들을 위해 공관 잔디밭에 그네와 모래사장, 축구 골대를 설치했다. 세금 들인 호화 리모델링의 혜택을 본 사람은 철저히 김 대법원장과 그 가족이었다. 그런데 "전임 대법원장이 한 일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2년 전 관용차를 거부하고 버스·지하철로 대법원에 온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면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해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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