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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나는 경공모 회원...‘드루킹=사이비교주’ 몰랐냐고요?

4월16일 드루킹이 공동대표로 있는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일명 ‘산채’)에서 취재진과 관계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4월16일 드루킹이 공동대표로 있는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일명 ‘산채’)에서 취재진과 관계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21]
소액주주운동하자며 회원 모아 경제적 부 약속
배신자에겐 ‘연변거지’ 보내 처단 협박도
네이버 댓글 추천수 조작 사건’의 범인들이 붙잡혔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의 중심에는 드루킹(본명 김동원·48)과 그가 2014년 만든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호적 댓글 달기 운동을 벌였던 드루킹과 경공모가 한순간 반대편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청와대의 ‘인사 청탁 거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집단에 가까운 경공모의 운영 방식도 한몫했다. <한겨레21>은 경공모 회원 3명을 인터뷰해 그간 이 모임의 내부에서 있었던 얘기를 재구성한다. 자신의 신원을 감춰달라는 이들의 요청에 따라 사연을 섞어 1명의 이야기로 풀었다.
_편집자
저는 드루킹이 이끄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입니다. 한때 드루킹을 믿고 의지했고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댓글 작업을 했습니다. 사이비 교주인지 몰랐냐고요? 그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제가 왜 빠져들었는지 듣는다면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전 노무현 대통령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습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큰 좌절만 맛봤습니다. 남은 건 ‘저들’이 선거 조작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뿐이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은 결정타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이민을 갈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거사’ 위한 비밀결사단체 경공모
경공모를 알게 된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지인한테 ‘드루킹의 자료창고’라는 블로그를 소개받았습니다. 내가 답답해하던 걸 명쾌하게 풀어낸 게 참 많았습니다. 예언이야 재미로 넘겼지만 정치인들과 계파별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력이 매력적이었습니다. 2~3일 동안 밤을 새워 글을 읽었습니다.
드루킹의 블로그에서 링크를 타고 넘어가 경공모라는 카페도 알게 됐습니다. 소액주주운동으로 대기업을 국민들 품에 돌려주자는 운동을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여기라면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작은 힘을 보태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세력을 우리 힘으로 처단하자는 말에도 혹했고요. 그렇게 경공모에 가입하고 드루킹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게 됐습니다.
드루킹은 회원들에게 세 가지 비전을 보여줬습니다. 정치적, 금전적, 종교철학적 비전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친일·보수·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금전적으로는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송하비결>(조선 말의 예언서)을 독자 해석해 나라의 미래를 예언했고, <자미두수>(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점술서)와 <정전역해>(주역 해설서의 일종)를 통해 개인의 앞날을 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정말 말을 잘합니다.
경공모 회원들은 착한 이들입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변호사, 의사, 교수 심지어 강력계 형사까지 직업도 다양합니다. 드루킹은 우리가
트루킹 페이스북 갈무리
트루킹 페이스북 갈무리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줬습니다. 경공모를 ‘비밀결사단체’ ‘화적떼’라 일렀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전사로서 들키지 않으면, 불법적인 일도 감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드루킹은 ‘거사’(혁명)를 진행해야 한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경공모에서 소액주주운동으로 돈을 모아 삼성, 네이버 등 대기업을 인수한 뒤 회원들에게 부를 나눠줄 거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었고 언제부턴가 거사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을 개성공단에 이주할 수 있도록 알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경공모에서 확보합니다. <송하비결>에 따르면 일본열도가 곧 침몰할 건데 그때 일본인들을 개성공단으로 이주시킵니다. 물론 개성공단도 우리가 확보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요. 이때 오사카 총영사가 일본인들의 이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그들의 재산을 일정 부분 접수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경제적 이익을 회원들에게 제공한다는 겁니다.
7개 등급 관리로 성취감 자극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에 집착한 이유입니다. 회원들에게 약속한 경제적 부와 장밋빛 미래는 경공모를 유지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자신이 계속 ‘왕 노릇’을 하려면 최소 첫 디딤돌인 오사카 총영사는 확보돼야 했던 거죠. 회원들이 실망해 떠날까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드루킹은 경공모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회원들은 실제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고 믿었습니다. 온라인 댓글 작업(선플 운동)을 통해서요. 선플 운동은 2016년 가을부터 약 1년간 진행됐습니다. 드루킹의 독려 속에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네이버, 다음, 네이트에 들어가 문재인 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남기거나 추천을 눌렀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몰래 댓글을 남겼고, 퇴근한 뒤엔 밥도 안 먹고 2시간씩 열심히 했습니다.
2017년 초 대선 경선 때는 경공모 회원들이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이란 이름으로 수백 명씩 민주당 지역경선에 쫓아다녔습니다.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했고, 4천원을 내고 수건도 단체 구매했습니다. 돈 한 푼 안 받고, 내 돈 쓰며 자원봉사한 겁니다. 대선 경선 때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5천여 명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 후 회원 정리를 해 얼마 전 카페가 폐쇄되기 전까지 2천여 명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드루킹 블로그 갈무리
드루킹 블로그 갈무리
드루킹은 계급을 통해 사람의 호기심과 성취감을 교묘히 자극했습니다. 경공모에는 ‘노비’ ‘달’ ‘열린지구’ ‘숨은지구’ ‘태양’ ‘은하’ ‘우주’ 등 총 7개 등급이 있습니다. 이 중 숨은지구 이상의 등급은 정기적으로 ‘지정학 보고서’라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고급 정보가 담긴 보고서입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세 군데서만 작성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국가정보원, 삼성 그다음이 경공모라고 했습니다. 이게 궁금해 회원들은 승급을 하려고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승급심사는 3~6개월에 한 번씩 이뤄집니다. 인사 스태프가 꼼꼼하게 회원들을 관찰해 점수를 매겼지요. 대체로 ‘모든 강의를 신청하고, 물건 많이 사고, 드루킹의 생각에 잘 동조하는 사람들’이 빨리 승급했습니다.
열린카페에서 활동하는 열성 회원들과 숨은카페 회원 대부분은 온·오프라인 강의 수강료로 매달 9만원 이상 지출했습니다. 그땐 돈이 아까운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산채’(느릅나무출판사)라는 경기도 파주 경공모 사무실에서 회원들이 자원봉사로 만든 수제비누, 느릅차, 봉봉주스(유산균 주스), 원당(사탕수수), 아로마오일 등을 사는 데도 몇만원씩 냈습니다. 산채 내부 사정을 아는 회원의 말로는 매달 강의료 수입만으로 8천만~9천만원을 벌고, 물건 판매 대금까지 합치면 월 1억5천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제가 경공모 활동을 하는 동안 일부 행사의 내역을 공개한 적은 있지만 전체 회계를 공개한 적은 없습니다.
경공모 내 ‘패거리질’ 금지
드루킹은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 회원을 요주의 인물로 올리는가 하면, 의문을 제기하고 반발하는 회원은 가차 없이 회원 자격을 박탈해 강퇴시켰습니다. 드루킹은 자신이 아는 조폭이 있다며 경공모를 배신하는 사람에겐 ‘연변거지’를 보내 처단한다고 했습니다. 영화 <범죄도시>처럼 말이죠. 회원 중에 변호사가 있으니 덤비는 사람은 ‘고소미를 먹여주겠다’(고소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드루킹은 세상이 모르는 ‘진실’을 입에 담아 경외감도 불러일으켰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물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보 장사를 하기 위해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내용이었죠. 원래 어뢰를 쏴서 폭파시키려고 했는데, 어뢰가 터지지 않고 배에 박혀 급히 잠수함을 충돌시켰다고 했습니다. 전 지금도 이 내용이 신빙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언이 들어맞은 것도 있습니다. 2016년 7월쯤, 드루킹은 “최순실로 인해 연말쯤 박근혜 운세가 꺾인다.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경공모 회원들은 최순실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나오기 한참 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해 말 JTBC 태블릿PC 보도가 나왔을 땐 ‘드디어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주인’(경공모가 자체 개발한 채팅앱) 갈무리. 드루킹은 자신을 “경제민주화·소액주주운동가, 인문학 강사, 출판인, 공동체를 통한 경제적 자유의 달성을 추구”라고 소개했다. 주주인에서 드루킹은 문재인정부를 겨냥해 “친문 핵심이라는 이 조직은 너무 이상해요” “저는 이들이 제수이트(예수회)라고 이제 확신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주주인’(경공모가 자체 개발한 채팅앱) 갈무리. 드루킹은 자신을 “경제민주화·소액주주운동가, 인문학 강사, 출판인, 공동체를 통한 경제적 자유의 달성을 추구”라고 소개했다. 주주인에서 드루킹은 문재인정부를 겨냥해 “친문 핵심이라는 이 조직은 너무 이상해요” “저는 이들이 제수이트(예수회)라고 이제 확신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드루킹은 자체 개발한 채팅앱인 ‘주주인’에서 등급별 채팅방을 만든 뒤, 방별로 정보 제공에 차등을 뒀습니다.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방에선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늘 궁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고급 정보도 없었지만 당시엔 승급심사를 통과할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회원들 사이에 계급을 나누고 장벽을 쳐 관리하기 쉽도록 한 겁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드루킹의 행동은 모순투성이였습니다. 그는 늘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회원들이 소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회원들이 친해지면 싸움·불륜이 일어난다며 이름도 연락처도 물어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매달 경희대와 산채를 찾아 강연을 들었지만 한 번도 뒤풀이가 없었습니다. 내부 규약에도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 모든 ‘패거리질’을 금지한다고 돼 있고요. 채팅방은 드루킹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공간입니다. 회원들은 조심스럽게 질문만 할 수 있었죠. 유일하게 3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오프라인 모임인 ‘홍어번개’ 때 회원들끼리 홍어와 술을 먹으며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드루킹 따라 파주로 이사
드루킹은 ‘나는 공동체의 추장이지 왕이 아니다. 나를 너무 치켜세우지 말라’며 왕 노릇을 했죠.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최소 500여 명(숨은지구 등급 이상)이 그를 절대적으로 따랐습니다. 그가 거사에 성공하면 파주에 건설해 회원들에게 나눠줄 거라고 약속한 공동체 마을인 ‘두루미타운’이 곧 완성될 거라 생각해 파주로 이사 간 사람이 20~30명입니다. 이혼하고 간 회원도 있어요.
드루킹은 두루미타운을 전세계에 퍼뜨릴 거라 했습니다. 북한과 통일한 뒤 중국과 전쟁을 일으켜 만주를 넘겨받은 뒤 개성공단에 있는 일본인들을 이주시킬 계획도 세워놨죠. 웃지 마세요. 당시엔 나름 진지했습니다. 미국 기업 테슬라를 인수해 부산에서 영국 도버해협까지 하이퍼루프(테슬라가 연구 중인 초고속 진공열차)를 뚫어서 세계 물류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 저도 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수이트(예수회) 소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충격이었습니다. 2017년 말부터 드루킹은 우리들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이 섭섭하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드루킹이 “내가 김경수랑 통화했다. 김경수가 우리는 (문재인 정부 탄생공신) 2등이란다. 1등은 소속 신부가 6천 명인 예수회라고 한다”라고 했을 때 사실 저도 섭섭한 마음이 들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문팬’ 등 다른 커뮤니티에 비하면 ‘화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각개전투였거든요. 특정 시간에 특정 기사에 몰려가 한꺼번에 작업해야 조작이 이뤄지지, 우리처럼 각자 다른 시간에 들어가서 아무 기사에나 댓글 달면 화력이 집중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드루킹은 인사 청탁이 실패한 뒤인 2017년 말부터 악성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숨은지구 등급 이상에게 포털 아이디를 달라고 해 6~7개 건네줬습니다. 그땐 선플 운동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비슷한 목적으로 이용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세상을 바꿀 사람이니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설마 매크로로 악플을 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드루킹과 경공모 활동 일지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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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환 두려워 잠도 못 자
드루킹에게서 마음이 떠난 건 “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멘붕’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드루킹의 말이라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아지도 못 때릴 것 같은 그분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요. 혹시나 싶어 동생한테 얘기했다가 ‘정신 차려라’는 말만 들었죠.
정신을 차린 지금은 자괴감을 느낍니다. 나름 똑똑하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완전히 속았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발을 담갔던 후유증도 남아 있습니다. ‘혹시 드루킹 말이 진짜 맞으면 어떡하지? 진짜 두루미타운이 만들어지는 거 아냐? 그럼 난 회원이 아니라 못 들어가는데’ 이런 불안감이요. 다른 회원 중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들도 있습니다. 드루킹이 회원들 신상정보를 갖고 있는데, 그가 말한 조폭이 언제 집으로 들이닥칠지 몰라서요. 요즘 잠을 통 못 잡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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